수많은 사람을 보호했던 외교관에게도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가족이 있었다. 1945년 1월 라울 발렌베리가 소련 당국에 체포된 뒤, 가족은 그의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서로 맞지 않는 설명과 오래된 문서들이었다.

돌아오지 않은 만남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구조 활동을 펼쳤던 발렌베리는 소련 측의 통제 아래 들어간 뒤 모스크바로 이송됐다. 왜 그를 붙잡았는지, 이후 어떤 처분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충분한 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스웨덴의 문의와 가족의 요구는 이어졌다. 소식이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연락할 수 없다는 뜻일까. 실종자의 가족에게 침묵은 하나의 뜻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를 끝내면서도 기다림을 끝낼 수 없다.
전쟁 직후의 혼란은 정보를 찾는 일을 어렵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 않으면서 단순한 연락 두절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졌다. 가족과 정부는 그가 체포된 이후 어느 기관의 통제 아래 있었는지, 언제까지 살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실종자를 찾는 일에서는 마지막으로 확인한 날짜 하나가 중요하다. 그 이후의 생존을 보여주는 기록이 나오면 수색해야 할 시간이 길어지고, 사망을 입증하는 자료가 나오면 그 경위를 따질 수 있다. 발렌베리의 경우에는 그 기본적인 시간표부터 쉽게 닫히지 않았다.
뒤늦게 나온 한 장의 설명
1957년 소련은 발렌베리가 1947년 모스크바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사망했다고 주장한 해와 그 사실을 발표한 해 사이에도 긴 시간이 있었다. 그 설명만으로 모든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를 보았다는 후대의 증언들도 이어졌다. 어떤 가족에게 그런 말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격담만으로 생존을 확정할 수도 없었다. 닫힌 기록과 불확실한 증언 사이에서, 사람들은 다시 묻고 다시 기다려야 했다.
목격담이 이어질 때마다 가족은 이름과 시기, 장소가 맞는지 다시 살펴야 했다. 감옥이나 수용소에서 들었다는 말이 직접 본 것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 것인지도 구분해야 했다. 어떤 소식도 듣지 않는 고통과, 들을 때마다 진위를 확인하는 고통이 번갈아 찾아올 수 있었다.
그를 찾는 노력은 명성을 기리는 행사와 별개로 계속됐다. 기념비와 명예 시민권은 그가 남긴 구조 활동을 인정했지만, 가족이 알고 싶은 마지막 행적의 답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세계가 영웅의 이름을 크게 부를수록 가족에게는 한 사람의 소식이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법적 끝과 마음의 끝
2016년 스웨덴 당국은 그를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다. 그것이 실제 마지막 순간을 새롭게 밝혀냈다는 뜻은 아니었다. 행정 문서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곳과, 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곳은 같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름을 문서에 적었던 남자. 그의 이름도 오랫동안 문서 사이를 오갔지만, 어디서 어떻게 삶을 마쳤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발렌베리의 실종은 영웅의 신비로운 마지막 장면이기 전에, 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이들의 시간이었다. 답을 받지 못한 기다림은 얼마나 오래 한 가족의 일상을 차지할 수 있을까.
더 읽어보기: 스웨덴 정부의 발렌베리 자료 · 스웨덴 홀로코스트 박물관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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