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겨누던 참호 건너편에서 노래가 들려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1914년 첫 전쟁의 겨울, 서부전선의 일부 병사들은 그 낯선 순간을 맞았다. 어둠 너머의 적에게도 자신과 비슷한 성탄절이 있었다.

적이었던 사람들이 노랫소리로 답하다
영국군 참호에서도 답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던 병사들이 참호에서 기어올라, 무장하지 않은 채 진흙탕 무인지대(no-man's land)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어느 한쪽의 명령도 아니었다. 성탄 무렵 여러 구간에서 병사들 사이의 자발적인 접촉이 이어졌다.
참호 밖은 평소라면 상대의 사격에 노출되는 공간이었다. 그곳으로 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노래 한 곡을 들었다고 곧바로 서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몇 걸음을 내딛는 동안에도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야 했다.
그래서 처음의 작은 접촉이 중요했다. 인사에 인사가 돌아오고, 한 사람이 나왔을 때 총성이 나지 않는 경험이 다음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전선 전체에서 같은 시각에 벌어진 단일 행사가 아니라, 여러 곳의 병사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잠깐의 틈을 만든 사건이었다.
참호 사이에서 나눈 크리스마스
그날 크리스마스, 전선 여러 곳에서 많은 병사가 서로 접촉했다. 악수를 나누고, 음식과 술을 건네고, 함께 전사자를 매장했다. 어떤 전선에서는 참호 사이에서 축구 경기까지 벌어졌다. 바로 전날까지 서로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음식을 바꾸고 담배를 나누는 일은 특별한 평화 회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전쟁 전이라면 어디에서나 할 수 있었을 평범한 만남이었다. 그 평범함이 참호 사이에서는 놀라운 사건이 됐다. 서로 다른 군복 아래에서 추위와 피로를 겪는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함께 전사자를 매장하는 일은 더 무거웠다. 방금 이야기를 나눈 상대와 다시 싸워야 한다는 현실을, 그 자리에 누운 사람들의 몸이 보여주었다. 짧은 휴전은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서로의 얼굴을 알아버린 뒤 돌아가는 길은 나오던 길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야 했던 참호
상부는 격노했다. 적과의 교감을 엄금했고, 이듬해에는 이런 교류를 막으려는 통제가 더 강해졌다. 전쟁은 그 후 사 년을 더 이어졌다. 그러나 일부 구간에서는 잠시 총성이 멈추었고, 그들은 군인이 아닌 그저 고향이 그리운 젊은이였다.
휴전 뒤 병사들은 다시 자기편 참호로 돌아가야 했다. 조금 전 담배와 인사를 나눈 얼굴을 두고 총을 들어야 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짧은 만남은 더 오래 남는다. 서로를 적으로만 보던 시간 사이에, 상대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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