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9월 19일 밤, 바르샤바. 독일군이 거리를 봉쇄하고 남자들을 트럭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른바 '와판카(łapanka)' — 무차별 검거 작전이었다. 잡혀가는 이들은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실려 갔다. 그날 밤, 한 남자가 스스로 검거 대열에 발을 들였다. 폴란드 기병 장교 비톨트 필레츠키(Witold Pilecki). 그는 잡히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아무도 몰랐던 수용소
그가 향한 곳은 아우슈비츠였다. 1940년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제수용소. 철조망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폴란드 지하 저항조직은 정보가 절실했다. 그러나 정보를 얻으려면 누군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살아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한 곳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필레츠키가 손을 들었다. 그는 비밀 폴란드군(Tajna Armia Polska)의 창설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목숨을 거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내놓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그는 4859번 죄수가 되었다.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진 줄무늬 죄수복. 아침 점호, 강제 노역, 굶주림, 전염병. 그러나 필레츠키는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비밀 군사조직(ZOW)을 만들었다. 죄수들 사이의 연락망을 구축하고, 외부와의 통로를 뚫었다. 감시의 눈을 피해 쪽지가 바깥으로 흘러나갔다. 그 쪽지들에는 수용소의 실상이 담겨 있었다. 학살의 규모, 가스실의 존재, 매일 자행되는 살육. 훗날 '비톨트의 보고서(Witold's Report)'라 불리게 될 문건 — 홀로코스트에 대한 최초의 종합 보고서였다.
믿지 않은 세계
보고서는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보고서가 묘사하는 광기는 상식을 벗어나 있었고, 전쟁 한복판에서 그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없었다. 필레츠키가 목숨을 걸고 빼돌린 진실은 서류철 속에 묻혔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2년 반 동안, 그는 수용소 안에서 버티며 기록하고 조직했다.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1943년 4월 26일 밤, 필레츠키는 두 동료와 함께 철조망을 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945일에 가까운 수감 생활의 끝이었다. 이듬해 8월, 그는 바르샤바 봉기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평화가 그를 죽였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전쟁이 끝난 뒤에 시작되었다. 공산 정권이 들어선 폴란드에서 필레츠키는 체포되었다. 혐의는 '서방의 스파이'. 모코투프 감옥에서 고문이 이어졌다. 보여주기식 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었고, 1948년 5월 25일, 그는 총살되었다. 유해가 어디에 묻혔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1989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기까지 40년 넘게.
필레츠키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평화를 살아남지는 못했다. 나치가 그에게서 빼앗지 못한 것을, 전쟁 뒤의 조국이 빼앗아 갔다. 역사는 때로 가장 용감한 사람을 가장 늦게 기억한다. 1990년 복권된 그의 이름은 이제 폴란드의 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4859번 죄수 — 스스로 지옥에 걸어 들어간 남자. 세상이 뒤늦게 찾아낸 진정한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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