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와 미제 사건

배는 돌아왔지만 25명은 없었다 — 조이타호의 빈 갑판

Echoes Of Wonder 2026. 10. 24. 08:38

배를 찾았다. 그러나 구조해야 할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1955년 남태평양에서 발견된 조이타호는 심하게 기울었지만 여전히 떠 있었다. 실종됐던 배가 나타났다는 반가움은 곧 다른 질문으로 바뀌었다. 배가 남아 있는데, 그 위의 25명은 어디로 갔을까.

가라앉을 수 없는 배에서 사라진 25명 — 유령선 '조이타호'의 미스터리 — 이야기의 소재를 표현한 AI 일러스트
AI 재현 이미지 ·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 창작 일러스트이며 실제 인물·장소·사건의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출발은 1955년 10월 3일이었다. 조이타호는 사모아의 아피아에서 토켈라우로 향했다. 승객과 선원 25명이 탄 항해였다. 그러나 도착할 때가 지나도 배는 오지 않았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납득할 만한 연락도 닿지 않았다.

수색에서도 곧바로 찾지 못했던 배는 약 5주 뒤 피지 근해에서 발견됐다. 예정된 길에서 크게 벗어난 곳이었다. 선체는 옆으로 기울고 물이 들어찬 상태였지만 가라앉지 않았다. 목재 선체와 코르크 단열재 등이 부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가 나타났으니 이제 사람들을 찾을 차례였다. 그러나 갑판과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실종선 발견이라는 첫 번째 문제는 풀렸는데, 가장 중요한 두 번째 문제가 남은 것이다. 배를 점검하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을 구하는 수색에서 사람들이 왜 떠났는지 알아내는 조사로 바뀌었다.

텅 빈 배, 그리고 사라진 것들

수색대가 승선했을 때 마주한 것은 말 그대로 유령선이었다. 선원도 없고, 화물도 없고, 구명보트도 없었다. 항해일지는 사라졌고, 시계와 육분의도 자취를 감췄다. 누군가 배를 떠날 때 가져갔는지, 어떤 과정에서 사라졌는지가 의문으로 남았다.

무전기는 조난 주파수에 맞춰져 있었다. 구조를 요청하려 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흔적이었다. 하지만 안테나 계통의 결함 때문에 통신 범위가 크게 제한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장비 앞에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과 멀리 있는 누군가가 그 신호를 받는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물이 들어오는 배에서 바깥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판단은 더 급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승객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았고 언제 구명수단으로 옮겨갔는지를 무전기의 위치만으로 알 수는 없다. 조사관 앞에는 조난을 시도한 듯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갑판 위에 남은 피 묻은 붕대

그리고 갑판 위에는 의사의 가방과 피 묻은 붕대 네 장이 놓여 있었다. 배에 동승한 의사는 절단 수술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누군가 다쳤고, 누군가 치료를 받았고, 그 흔적이 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25명의 행방은 영영 밝혀지지 않았다. 시신도, 잔해도, 답도 없었다. 조사단은 수면 아래 파이프의 부식을 확인했지만, 떠 있는 배를 25명이 모두 버린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해적설, 반란설, 보험사기설이 돌았지만 어느 것도 입증되지 않았다.

조사관은 몇 주가 지난 배를 보고 있지만, 배를 떠났을 사람들은 그 뒤 몇 주 동안 선체가 버틴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나 배의 기울기가 당장 가라앉을 징조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살아남은 배의 모습만으로 그들의 선택이 터무니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목적지로 갈 수 있느냐, 배 안에서 기다릴 수 있느냐, 바깥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느냐. 항해 중에는 서로 다른 문제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조이타호에서는 배의 부력만 마지막까지 남았고, 그 문제들을 판단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남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아직 떠 있는 배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안전해 보였을까. 물이 차오르고 연락이 닿지 않는 순간에는 같은 배도 전혀 다른 장소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내린 마지막 결정을 알 수 없기에, 조이타호의 빈 갑판은 쉬운 답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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