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과 선택

계단을 내려가던 사람들은 그 길을 알고 있었다 — 릭 레스콜라의 대피 훈련

Echoes Of Wonder 2026. 10. 23. 00:03

대피 훈련은 반복될수록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고, 줄을 맞추고,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일. 릭 레스콜라는 그 반복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에서 실제 대피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의 발은 이미 그 길을 알고 있었다.

불타는 타워에서 노래한 남자 — 2,687명을 구하고 끝내 돌아오지 않은 영웅 — 이야기의 소재를 표현한 AI 일러스트
AI 재현 이미지 ·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 창작 일러스트이며 실제 인물·장소·사건의 기록 사진이 아닙니다.

무시당한 경고

8년 전인 1993년,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폭탄이 터졌다. 그때부터 레스콜라는 경고했다. 다음 공격은 비행기로 올 것이라고. 회사 이전을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준비에 힘을 쏟았다. 3개월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대피 훈련을 강행한 것이다. 직원들은 불평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날 아침, 그 지루한 훈련이 수천 명의 생명을 가르는 경계가 되었다.

그날 오전 8시 46분,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한 곳은 북쪽 타워였다. 레스콜라가 근무하던 곳은 남쪽 타워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눈앞의 참사를 보고도 자신이 있는 건물에서 바로 나가야 하는지 판단해야 했다. 나중의 결과를 알고 보면 당연한 대피도 당시에는 결정이 필요한 행동이었다.

모건스탠리의 보안 책임자였던 그는 직원들을 움직이게 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이 동시에 밖으로 나가려면 출구만 알려주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사람들을 계단으로 안내하고 이동을 계속하도록 해야 했다. 9시 3분 두 번째 비행기가 남쪽 타워에 충돌하면서 그 대피는 훨씬 더 절박해졌다.

계단에 울려 퍼진 노래

불은 위층에서 번지고, 공포는 아래층에서 차올랐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계단으로 몰리면 압사마저 일어날 수 있는 상황. 레스콜라는 확성기를 들고 웨일스의 노래 '멘 오브 할렉(Men of Harlech)'을 불렀다. 전쟁터로 향하는 병사들을 격려하던 노래였다. 그 노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공포를 진정시켰다. 한 명, 또 한 명. 수천 명이 타워를 빠져나왔다. 그 사이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에게 사랑과 안심의 말을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반복 훈련의 의미는 여기서 드러났다. 어느 계단으로 갈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새 지시를 이해하는 것과, 이미 여러 번 걸어본 길을 다시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익숙한 동작이 있다는 사실은 긴급한 순간 판단해야 할 일을 줄여준다.

레스콜라의 노래도 피난을 공연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불안이 빠르게 번질 수 있는 좁은 계단에서, 사람들을 계속 움직이게 할 목소리가 필요했다. 준비해온 길과 그 순간의 안내가 함께 작동했다. 그가 지켜온 평소의 일이 비로소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된 것이다.

다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간 남자

많은 직원을 대피시킨 뒤, 레스콜라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10층, 위를 향해 오르는 뒷모습이었다. 오전 9시 59분, 남쪽 타워가 무너졌다. 그는 남쪽 타워 붕괴 때 목숨을 잃었다. 그가 남긴 것은 노래 한 곡과, 살아서 계단을 내려온 수천 명의 발걸음뿐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의 용기를 쉽게 기억한다. 레스콜라의 경우 그 용기는 훨씬 전부터 시작돼 있었다. 불평을 들으면서도 훈련을 반복하던 평범한 근무일들 속에서.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 눈에 띄지 않을 때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날 계단을 내려온 사람들이 답의 무게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관련 영상: 영상 보기

더 읽어보기: 9·11 추모박물관의 당일 시간표

이어서 읽기

붙잡히기 위해 거리로 나간 남자 — 아우슈비츠의 4859번 죄수

아이들의 다음 여름을 바꾼 소식 — 조너스 솔크와 소아마비 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