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27일, 인류는 역사상 가장 가까이에서 핵전쟁을 마주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그날, 대서양 심해에서는 미국 함대에 포위된 소련 잠수함 한 척이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 남자가 인류의 운명을 놓고 투표하고 있었습니다.
13일간의 벼랑 끝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이 배치된 사실이 발각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13일간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갔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해역 봉쇄를 선언했고, 소련 잠수함들은 그 봉쇄선을 향해 출항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B-59였습니다.
문제는 B-59가 핵어뢰를 탑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함내 분위기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습니다. 며칠째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냉방 장치도 멈춘 채, 100도가 넘는 선내 온도에 시달리던 승무원들은 사실상 모스크바와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깊이 폭발하는 폭뢰, 그리고 세 표
미 해군 구축함들이 B-59를 포위하고 폭뢰를 투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체에 울리는 폭발음 속에서, 사비츠키 함장은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와 정치장교 마슬렌니코프는 미국 함대를 향해 핵어뢰를 발사하기로 투표했습니다.
하지만 발사를 위해서는 세 명의 고위 장교 전원이 찬성해야 했습니다. 세 번째 남자, 바로 이 잠수함 편대의 참모장 바실리 아르히포프였습니다.
그가 던진 한 표, "반대"
아르히포프는 거부했습니다. 쿠바 위기의 전말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그는, 미군이 쏘는 것은 '전쟁 개시'의 포격이 아니라 잠수함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경고 폭뢰라고 판단했습니다. 숨이 막히는 선내에서, 동료들의 분노와 공포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의 한 표가 없었다면, 핵어뢰는 발사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합니다. 아르히포프의 고요한 거부는 잠수함을 수면 위로 올렸고, 위기는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아무도 모른 채, 조용히
이 사건은 수십 년간 기밀에 묻혔습니다. 아르히포프는 훈장도, 명성도 받지 못했습니다. 199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세상이 자신의 빚을 졌다는 사실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았습니다. 세계를 구한 남자가 가장 유명하지 않은 영웅으로 남았다는 것 — 그것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가장 아픈 역설입니다.
세상이 가장 가까이에서 파멸을 엿본 그날, 파멸의 손을 붙잡은 것은 거대한 무기가 아니라 한 인간의 고요한 거부였습니다. 역사는 그를 오래도록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오늘 숨 쉬는 이 평온은 그의 빚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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