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22일 밤 9시, 미국 시카고. 채널나인(Channel Nine)의 뉴스 스포츠 코너가 한창이던 그 순간, 화면이 갑자기 노이즈로 뒤덮였다. 이어 나타난 것은 고무 마스크를 쓴 낯선 인물이었다. 불과 25초 남짓, 그는 방송 전파를 가로챘다가 사라졌다. 기술진은 주파수를 급히 전환해 신호를 되찾았으나, 그날 밤의 전율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두 시간 후, 그는 돌아왔다
같은 날 밤,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가 방영되던 중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90초간 화면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왜곡된 목소리로 지역 방송인들을 조롱하더니, 마지막에는 누군가 파리채로 그를 내리치는 장면으로 방송이 끝났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범행
1987년, 방송국의 신호를 탈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송국의 송신 신호를 덮어쓰려면 고출력 송신기와 마이크로파 링크를 정확히 겨누는 전문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였으나,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에는 끝내 실패하였다.
40년째 열려 있는 파일
공소시효는 1992년에 만료되었다.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고, 용의자는 단 한 명도 지명되지 않았다. 거의 40년이 흐른 지금도, 그 가면의 사나이가 누구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체를 감춘 채 세상에서 가장 공개된 무대를 빼앗은 사나이. 그의 화면은 꺼졌으나, 그가 남긴 질문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끝내 이름을 남기지 않은 자가 남긴, 가장 요란한 침묵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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